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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 이동: 정유진의 작업에서의 재난 담론

조디 그라프

재난(disaster)’이라는 단어는 라틴어에서별이 없는’(운이 없는, 불길한 별 아래)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이는 동시에 빛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미술사의 연대기에는 각종 사고와 비극을 비춰 보이려는 시도들이 배열하다. 자크 칼로의 <전쟁의 참상>(1633),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1819), 가스파르 드 프리드리히 <까마귀 위에 한 남자>(1831), 케테 콜비츠의 <죽은자들>(1923), 브루스 코너의 <크로스로드>(1976) 등이 그 예다. 이 작품들은 전쟁, 난파, 쓰나미, 핵폭발과 같은 혼란의 장면들을 이미지라는 비교적 안정되고 소화 가능한 형태로 응축시켰다. 이러한 작업들은 경고와 기억을 보존하는 역할을 해왔지만, 동시에 고통을 미학적으로 포장할 위험도 내포한다. 예를 들어, 18세기 낭만주의 부상이 귀족들의그랜드 투어’—그리스·로마 유적 순례와 나란히 진행되며 숭고·잔존·국가주의·과거사이의 연결을 부추긴 역사, 곧 재난 관광의 원형은 오늘에까지 잔향을 남긴다.

 

정유진의 작업은 이 계보를 비스듬히 절개하며, 오늘의 동시대 작가가 재난에개입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묻는 공간을 연다. 2024 부산비엔날레에서 정유진은 <망망대해로>를 발표했다. 석고보드와 파이프를 조합해 파괴된 종말론적 풍경을 만들어낸 대규모 설치작으로, 관객은 속이 드러난 벽 사이를 거닐며 한 방에서 다른 방을 들여다볼 수 있다. 정유진은 17세기 해적 프랑수아 블로네의 <피비린내 나는> 모험담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 작업의 발상은 17세기 해적 프랑수아 블로네의 일화에서 왔다. 나라라로 가던 중 좌초한 해적 프랑수아는 퇴각 대신 난파선 잔해로 새 배를 만들었다. 정유진은 공간 자체를 해체해 매어낸 부재들을 설치물 구성하는자기 식인의 방식으로 이 사건을 비유한다. 관객이 마주한 장면이 파괴인지 재건인지마치 자신의 꼬리를 삼키는 뱀처럼단정하기 어렵다. 해적행위는 세계화된 교역의 매끈한 흐름을 스스로 균열로써, 오랫동안 자본주의의 탈출구로 유혹되어 왔다. 그러나 동시에 폭력과 개인적 이윤 추구가 예외 상태 속에서 증폭되는 메커니즘이기도 하다. 정유진의 작업은 동시대 미술 역시 유사한 딜레마에 갇혀 있음을 시사한다. 교란하려는 몸짓이 역설적으로 체제를 보강하는 역류를 낳는다는 점에서다.

 

2019년작 <해적판 미래> 역시 이러한 파국적 예외 상태를 다룬다체르노빌과 후쿠시마를 둘러싼 최근의 재난을, 그 현장을 겪은 이들과 그 참사를 삶과 작업의 일종의 재료로 흡수한 이들에 대한 인터뷰로 엮은 장편 비디오다. 쓰나미·지진 이미지와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결합한 다채로운 콜라주를 제작하는 일본의 한 작가와의 대화는 오늘의 미디어 환경에 만연한 이질적 이미지의 충돌을 반영한다. 다른 대목에서 뉴스 진행자는 후쿠시마 이후 경제 재도약의 기표로 마케팅된 ‘2020 도쿄 올림픽을 언급한다. 체르노빌출입구역투어 회사를 운영하는 이와의 인터뷰에서는 방사능 측정기를 든 관광객들이 버려진 가옥을 배회하며 잔존 위험의 흔적을 사냥하듯 찾는 장면이 스친다. 그는내가 이겼다. 승리했다”—분명한 냉소를 품고말한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수익으로 전환했음을 자인하는 셈이다.

 

<해적판 미래> <망망대해로>는 비판적 양가성을 매개로, 재난 이미지가 무한히 유통되는 환경에서 예술이 어떤 위치를 점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미 나아가 오늘의 재난은 무엇처럼 보이며, 그로 누구에게 이야기가 돌아가는가라는 급박한 질문을 제기한다. 이론가 폴 비릴리오는 2005년 『과거의 재난』이 특정 장소와 국면에 국한된 현장(in situ) 사고였다면, 이제는 다른 사고들을 통합하는 총체적 사고가 등장했다. 체르노빌 현상은 끊임없이 통합됐다고 말했다우리가 사는 시간은 평창의 위기 시대다. 끝나지 않는 전쟁, 깊게 잠존하는 팬데믹, 환경 붕괴, 경제적 불안정. 한편으로 이러한 사건들은 전례 없이 자주 이미지화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규모미시적이면서도 거대하고, 말 그대로 환경적와 점진적 진행 탓에 얼굴을 포착하기 가장 어려운 형상으로 미끄러진다.

 

2020년 팬데믹 동안완결된 과거형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극준에 적응한 또 하나의 지속형 재난. 정유진의 시선은 지속적이고 은밀한 파국들, 이론가 아릴멜라 아흐메드가 말하는체제가 만들어낸 재난쪽으로 더 기울었다. <신두깨비>(2021)는 손이 고층 아파트 단지 속 소형 모형 위에 모래를 밀어 넣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작업은 정유진이 성장한 강남의 아파트 단지가 의도적으로 철거되고 재개발되는 과정을, 그녀의 어머니와 오빠의 시선을 통해 풀어낸다. 비트코인 투자자인 오빠는 부동산 투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암호화폐 시장에 진입한 이들이 많다고 말한다. “인간은 이윤을 찾아 움직이는 동물이라며재개발이 되면 땅값은 오르게 마련이고, 아름다운 추억에만 매달려 그들에게 돈을 벌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고 덧붙인다. 영상에는 철거가 절반쯤 진행된 주거 단지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것들은 하나가 무너지고 또 다른 것이 세워지기 전, 애매하고 부유하는 상태로 존재한다.

 

2024년 뉴욕으로 이주한 이후 정유진은 거리와 도시 곳곳의 건설 현장에서 모은 산업 폐기물골판지, 금속, 플라스틱을 우아하면서도 위험적인 추상 조각으로 변환하기 시작했다. <Earthmovers>라는 제목의 이 연작은 땅을 파내고 평탄화하는 중장비의 굉음과 진동을 응축한다. 정유진은땅을 파고, 다시 하늘을 향해 올리는 이 끝없는 순환끝없는 굴착과 상승의 리듬이 내가 관심 있는 붕괴의 윤곽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재난이 일어나면 누군가는 현장을 정리하는 일을 맡는다. 토목 장비, 불도저, NGO, 개발업자들. 1942년 경제학자 조지프 A. 슘페터는 자본주의의내재적영원한 창조적 파괴의 충동을 언급하며, 새로운 산업 역명을 찾기 위해서는 기존의 경제 구조물질적인 비용적재를불탄 시험해야 한다고 말했다.⁴ 다시 말해, 새로운 배를 만들기 위해서는 폭풍이 필요하다는 것이다.